잡생각

강아지와 나

구저씨 2023. 5. 31. 22:13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즈음, 우리 집에 강아지를 데려왔다.

 

당시 리그오브레전드를 재밌게 플레이중이었던 나는, 내 첫 강아지에게 "티모"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게임 내 캐릭터)

그때 우리 집은 여러가지 악재가 겹쳐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고, 그런 시기에 티모는 나와 내 가족들에게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티모는 내 고등학교 졸업식, 대학교 입학, 군 입대 및 전역, 편입까지 거의 내 인생의 모든 굵직한 이벤트를 함께했다.

 

2021년 티모가 9살이 되었을 무렵 어느날, 티모는 갑자기 온 몸을 떨기 시작했고, 나는 으레 강아지들이 아프면 몸을 떨듯이 간식을 잘못 먹어 잠시 아픈 것이라 생각했었다.

 

다음날이 되어도 티모는 계속 몸을 떨었으며, 동물병원에 찾아가 검사를 받아보니 급성 폐 경화라고 하였다.

정확한 원인과 증상은 기억나지 않는데, 폐가 점점 굳어가 호흡이 어려워지며 나중에는 강아지가 죽을 것이라고했다.

운이 좋아 폐 경화가 멈추면, 굳지않은 남은 폐로 살아 갈 것이라고 하였고, 우리는 티모를 위해 인큐베이터 같은 강아지 산소방을 대여하여 티모를 그 안에서 지내게 하였다.

 

하지만 티모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상태가 심각해졌고, 나와 내 가족들은 티모의 산소방 앞에서 밤을 새워가며 티모를 돌봤다. 무언가 내가 자고있을때, 가족들이 잠에 들었을 때 티모가 외롭게 생을 마감할까봐 잠을 잘 수 없었다.

티모가 괴로워 할 때마다 안락사를 선택해야하나 고민하였는데, 상태가 괜찮을 때에는 집안 곳곳을 힘겹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차마 안락사를 시킬 수 없었다.

 

설 이후, 티모의 상태가 심각해져 피를 토하기 시작했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우리는 안락사를 시키기로 결정하고 아픈 티모를 담요에 안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엄마와 동생이 뒷좌석에서 티모를 안고있었는데, 안락사를 선택하였다는 우리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는지, 병원 가는 길 티모는 제일 좋아하는 엄마 품에서 우리 곁을 떠났다.

 

그날 오후, 강아지 화장터에서 티모를 화장시키고 유골함을 받아 집에 도착하였다.

2주 정도 유골함을 집에 두고 묻어주지 못하였던 우리 가족은, 결국 티모를 묻어주었다.

그냥 귀엽고 예쁜 강아지라고 생각하였던 티모는, 사실 우리집의 막내이자 가족이었던 것이다.

 

내 자취방 근처에는 24시간 동물병원이 있는데, 퇴근 후 그 앞을 지날때마다 늘 생각한다.

세상에 아픈 강아지가 없었으면 좋겠다고.